[칼럼]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위하여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위하여
– 박재우
“과거 백 년 동안 정신건강시스템은 상태가 악화되어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는 병든 상태에서 회복하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정신건강시스템이 필요하다.”
_ 보스턴대학 교 정신재활센터의 책임자인 William Anthony의 말입니다.
1952년 클로르프로마진 탄생 이후 정신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어왔습니다.
정신장애 진단 도구로 널리 활용되는 DSM의 체계화와 유전자와 신경전달물질 연구에 기반한 정신약물학의 성과가
생물정신의학의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그 결과 정신질환은 뇌질환이라고 정의하기도 하죠. 이쯤되면 정신질환은
신체적 근거 없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에 불과하다고 했던 푸코의 말이 무색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약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신재활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Anthony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정신약물학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조현병, 조울병 등 주요 정신장애를 단기간에 완치할 수 있는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아니, 장기간이 소요되더라도 약을 복용하면 조현병 환자들도 고혈압 환자처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의 약이 개발된다면 회복을 돕기 위한 새로운 정신건강시스템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지난 2000년에 인간 유전자(게놈)지도가 공개되고, 뇌 신경세포와 신경전달물질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맞춤형 유전자 치료와
신경전달물질을 통제하는 약물의 개발을 통해 조현병을 비롯한 주요 정신장애의 임상적 치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2000년 이후 새로운 기전의 탁월한 정신약물이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도 정신질환을 완치하거나, 고혈압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약의 탄생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 오면 제가 일하는 서초열린세상의 문을 닫아야겠지요. 하지만 그 날이 쉽게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복잡성 때문입니다.
유전학과 신경세포 연구가 깊어질수록 정신질환에 관계된 유전자와 신경전달물질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정 유전자 또는 신경전달물질이 특정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정도가 뚜렷하면(침투도가 높으면) 치료적 접근도 오히려 용이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다수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원인치료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뇌라는 하드웨어와 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와의 관계를 밝히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뇌를 고성능컴퓨터에 비유하곤 합니다. 아시다시피 컴퓨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되어 있으며,
각각을 분리해서 접근하거나 교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뇌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둘은 하나인 것 같기도 하고, 둘인 것 같기도 합니다. 뇌와 정신작용의 관계가 훨씬 더 명확해지지 않으면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에 기반한 정신약물치료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 입니다.
아침 식사 후 가벼운 마음으로 비타민 한 알을 삼키듯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기분 좋게 출근하는 평범한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하지만,
당장 오늘을 살아가는 당사자들에게 백마 탄 왕자가 치료제를 들고 나타나길 기다리며 견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신약물의 성과와 한계를 인정하고, 약물로 이룰 수 없는 영역을 채울 수 있는 지원체계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Anthony가 말한 ‘회복하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정신건강시스템’이겠지요.
그 시스템은 인간의 보편성에 근거한 체계여야 할 것입니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인간이니까요.
정신장애의 유무에 관계없이, 인간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자유(율)·유능·관계’와 ‘안전감’이라는 필요조건을 갖추어야합니다.
인간은 자유롭다고 느낄 때,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자신이 행사할 때 건강해집니다.
또한 자신이 유능하다고 느끼고, 성취감을 맛보아야 합니다. 열등감, 실패감은 불행감을 낳습니다. 관계는 인간을 살아 숨쉬게 만듭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인간에 대한 가장 오래된 정의이지요. 마지막으로 인간은 안전감을 느껴야 정신적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범죄나 사고 같은 물리적 불안 뿐 만 아니라 빈곤처럼 인간됨의 조건을 박탈하는 사회 경제적 불안으로부터 벗어나야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정신건강을 위한 필수요소를 정작 정신장애 당사자에게는 제대로 공급하지 않고, 약을 통해서 해결하라고 윽박지르는 현재의 정신건강시스템입니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무능력하고 위험한 존재로 평가되고 자율성을 통제 당합니다. 단적인 예가 강제입원입니다.
강제입원은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율성을 박탈하는 행위입니다. 강제입원의 치료적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화되어야할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유능감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박탈된다는 점입니다. 양성증상, 음성증상, 인지기능 장애의 영향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급격히 상실한 당사자가 유능감을 재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심리적 지지와 실재적 기회가 함께 제공되어야 합니다.
병이 나은 후에 일도 하고 공부도 하자는 방식의 접근은 회복의 걸림돌이 됩니다.
정신장애가 발생하면 대부분 사회적 관계가 단절됩니다. 돌아갈 학교도, 직장도 없는 상태에서 음성증상도 심해지면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관계를 통해 공급받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환영받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망이 있어야합니다. 관계가 약입니다.
자율성이 통제되어 의료적 관리의 대상이 되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기회도 제한되며, 관계의 단절로 소속감을 느낄 공동체도 사라진 상태에서
빈곤은 당사자의 삶을 피폐하기 만듭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회복은 고사하고 재발을 피하는 게 목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정신건강과 의미 있는 삶을 지원하는 새로운 시스템은 영혼의 3대 영양소인 ‘자유(율), 유능, 관계’의 형성을 지원하는
회복(Recovery) 실천과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복지체계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체계입니다. 그 조건 위에서 보충적으로 정신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지요.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평범한 삶은 정신질환을 완치하는 약물이 개발되어야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치료제를 기다리지 말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 이 글은 2018. 1.25 에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