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신장애인에게 휠체어를!
정신장애인에게 휠체어를!
– 박재우(서초열린세상)
정신건강 정책과 서비스의 무게 중심이 ‘치료’에서 ‘회복(Recovery)’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건 이미 상식이 됐다.
회복이란 희망과 자기결정의 토대 위에서, 긍정적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며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걸 말한다.
즉 ‘증상(관리)’에서 ‘(인간다운) 삶’으로 키워드가 이동한다는 뜻이다.
‘치료’와 ‘회복’은 수단과 목적의 관계다. 치료를 통해 증상을 안정시켜서 뭐하겠는가?
결국 당사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진단, 처방, 복약을 비롯한 모든 치료는 그 자체가 목적이나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당사자가 원하는 삶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는 치료가 약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기를 ‘질환’으로 해석하고 의료적 개입을 통해 치료하는 생의학 모델은
‘질병은 단일 기저의 생물학적 원인을 가지며 그 원인이 제거되면 건강한 상태로 돌아간다’는 핵심 가정에 기반한다.
즉, 질병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환자가 발병 전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약이 개발되지 못한 상황이라
생물학적 원인의 존재 유무에 대한 논쟁도 있지만 정신약물의 놀라운 효과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조현병 치료의 장기추적 연구에서 보여지 듯 25~30%의 환자들만이 완치에 이른다면
의료적 개입을 통해 원인을 제거함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견인하겠다는 접근의 한계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70~75%에 이르는 다수의 정신장애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접근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면에서 광기를 ‘손상’으로 해석하고 손상으로 인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보는 사회적 장애모델이 갖는 유익이 있다.
사회적 장애모델은 손상이 장애가 아니라 손상에 반응하는 사회의 대응이 부절적하거나 불충분한 데서 장애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당사자가 가진 손상으로 인해 능력 장애가 나타나고 그 결과로 사회적 장애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가진 손상과 상황적 맥락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장애가 구성된다.
무엇보다 사회적 장애모델은 성공적 치료의 기준을 증상 감소라는 근시안적으로 고정된 기준보다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하반신 마비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제공하면 당사자가 일어나서 걷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휠체어는 하반신 마비라는 증상을 개선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삶의 질에는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일터에 나가고, 친구를 만나고, 이동의 자유를 누림으로써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데는 휠체어만한 것이 없다.
휠체어의 효용은 그 사람이 일어나서 걸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느냐 마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휠체어가 필요하다.
증상(원인)을 치료해서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접근만이 아니라 증상을 통제하지 않고도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휠체어가 필요한가를 묻는 질문에 서초열린세상 회원들이 가장 절실하게 토로한 것은 ‘취업’과 ‘주거’였다.
취업한다고 당장에 증상이 개선되지 않고 직장 스트레스로 인해 오히려 일시적으로 증상이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취업은 당사자의 정체성과 자기가치감에 큰 영향을 줌으로써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
회복(Recovery)이 정신건강 정책과 서비스의 핵심 가치라는 건 인정하면서도
치료 중심의 접근이 최선이거나 최우선의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임상모델의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
증상 개선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증상이 아니라 ‘삶’을 중심에 두면 보이지 않던 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휠체어를 제공하자!
출처 : e마인드포스트(http://www.mindpost.or.kr)에 2019. 7. 10 게재된 글입니다.